1. 사람이 좋아야 한다. 그래야 일하기에 좋다.
이전 직장은 최대 9달 가까이 월급이 안 나왔지만 분위기는 썩 나쁘지 않았다.
직원의 90% 이상이 남자인 집단에서 다들 덩치와 생김새에 맞지 않게 서로 다독이고 응원하며 지적할 건 지적하고 넘어갔다.
특히 4살 많은 사장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회사 사정을 직원들과 공유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에 사과하고 또 사과했다.
모두들 생계에 심각한 문제를 겪었지만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다들 회사를 그만두는 날, 술자리는 눈물바다가 되었고, 그동안 쏟아부은 청춘과 열정. 노력 등이 배드엔딩으로 향했다는 점에 모두 안타까워했다.
지금은 서로 형, 동생하며 안부전화를 하다가 가끔 만나서 술잔을 기울인다.
아. 시간은 좀 걸렸지만 월급과 퇴직금, 그리고 위로금조로 추가로 더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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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회사는, 사람이 좋지 않다.
회사가 잘 돌아가지 않는 이유로 직원들은 대표이사의 무분별한 사업확장과 무리한 영업전략을 탓하고 있다.
반면 대표이사는 직원들이 무능하고 열심히 하지 않아 영업에 실패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서로를 감싸안을 생각도 없으며 남 탓하기에 바쁘다.
점심시간 잠깐 모두가 마주 앉아 밥을 먹을 때에도 대화가 없다. 그 외 시간도 마찬가지.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걸 불편해하는 내가 광대가 된다.
화제를 꺼내고, 대화를 이끌어간다. 마치 다른 방향으로 가려는 소를 억지로 끌고 밭을 가는 느낌이다.
내가 지쳐 입을 놀리는 것을 멈추면, 침묵이 흐른다.
침묵이 흐르면 자신들의 의지에 의한 것이지만, 불편해 한다. 불편해 하는 게 보인다.
또 누군가가 입을 열고 이야기거리를 던져주길 바란다.
그래봤자 떠드는 것은 또 나 뿐.
2. 다른 사람의 문제를 지적하거나 업무에 대한 평가를 내리려면 가급적 단 둘이서.
나는 회의를 즐기는 편이다. 같은 문제를 놓고 여럿이서 의견을 내놓는, 혹은 한 사람의 작업 결과물을 놓고 품평회를 하는 등의 회의를 즐긴다.
그러나 이곳은 다르다. 회의는 공개처형이오, 부관참시다.
회의 내용과 관계 없는 것으로 직원에 대한 지적을 계속하는가 하면,
지시한 내용으로 업무처리를 하면 '내가 언제 그랬나. 너 때문에 3일 일정을 까먹었다'는 등의 면박을 준다.
꼬맹이 직원이 보는 앞에서 면박을 당하면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미 한참 전에 덮어버린 프로젝트 파일을 리뷰하며 별 쓰잘데기 없는 부분까지 지적하는 부관참시까지.
필요하다면 직원들 앞에서 상관에 대한 지적과 업무 결과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할 수 있겠다 싶다.
그런데 개인이 모멸감을 느낄 정도면 좀 아니지 않나.
매일 아침, 회의실로 걸어들어오는 대표이사의 모습과, 거대한 도끼를 든 기괴한 형상의 처형자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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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력서를 매일 쓰고, 매일 내고 있다.
돈에 대한 욕심은 없다. 그저 일이 힘들더라도 함께 의지하고 버틸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