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글 : http://sbrobo.egloos.com/5883549
인간의 근육에는 기능에 따라 특수하게 분화된 몇 가지 근섬유 유형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자세를 잡는데 사용되는 근육에는 지구력이 강한 I형 섬유가 높은 비율을 차지하며 강한 힘을 내야 하는 근육에는 II형 섬유가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위에서 말했듯 I형 섬유는 오랫동안 지속되는 운동(유산소운동)에, II형 섬유는 쉽게 피로해지지만 강한 힘을 단시간에 내는(무산소운동) 데 적합하므로 단거리 경주선수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는 근육이다.
그렇다면 성대 내부의 근육은 어느 타입의 근섬유를 가지고 있을까? 2005년 J. F. Y. Hoh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대가 붙어있는 근육인 TA(Thyroarytenoid, 갑상피열근)는 II형 섬유로 이루어져 있으며 고음을 낼 때 필수적인 CT(Cricothyroid, 윤상갑상근)은 I형 섬유가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노래할 때 성대가 1초에 수백~수천번씩 진동하므로 TA근육이 I형 섬유로 이루어져야 할 것 같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럴 이유는 없다. 성대의 진동은 공기역학적인 이유로 발생하며 음정에 따라 진동속도가 바뀌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동은 성대가 하는 것이지 성대가 붙어있는 근육의 근섬유가 직접 진동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라 점을 알고 나면 이런 근육의 구성도 이해가 간다.
TA근육이 수축하면 성대 주름은 이완되고 두꺼워지며 저음을 내는 형태가 된다. 그리고 CT근육이 수축하면 성대는 얇고 팽팽하게 늘어나며 고음을 내는 형태로 변하게 된다. 이 두 메카니즘의 조합이 각종 음정변화에 대응하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대로라면 근육에 피로감을 주는 음정은 저음이다. '저음'의 기준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개인이 평소에 쓰는 음역대보다 더 낮은 음정을 내려고 애쓰면 근육이 지치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고음을 낼 때는 지구력이 강한 CT근육이 많이 사용되므로 근육 자체가 지칠 일은 없다는 뜻이다. 선행된 근육 연구에 따르면 II형 섬유는 정확히 말해 IIb형이라고 부르며 훈련을 통해 I형과 IIb형의 중간 형태인 IIa형 근섬유로 변할 수 있다. 즉 I형 섬유가 강하고 쉽게 지치는 IIb형으로 바뀌지는 않지만 IIb형 섬유가 느리지만 지구력 있는 IIa형으로 바뀌는 것은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직접 현장에서 활동하는 싱어들과 어떤 연관을 가지며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는가?
첫째, 저음을 지속적으로 내는 것은 고음을 내는 것 보다 성대의 진동량이 적기 때문에 목에 부담이 덜 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성대근육에는 고음보다 더 큰 피로를 줄 수 있는 행위이다. 다시말해 고음은 직접적으로 맞닿는 성대의 점막에, 저음은 성대가 부착된 근육을 피로하게 하므로 어느 쪽이든 적절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 학부 시절 어떤 선배님이 테너 아리아 악보를 보며 고음을 열심히 내다가 "목이 갔다"면서 바로 저성용 곡들을 꺼내 계속 부르는 걸 본 적이 있다. 물론 음성 건강에는 좋지 않은 일이다.
둘째, IIb섬유은 매우 민첩하므로 빠르게 움직이는 음정들에 대응하기 적합한 근육이지만, 큰 소리를 내기 위해 지속적으로 수축한 상태를 유지하는, 소위 말하는 흉성을 고음역까지 끌어올리는 행위를 계속 하다 보면 민첩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지구력을 얻은 근섬유는 그와 동시에 민첩성을 잃기 때문이다. 오페라 무대에 서는 테너들을 예로 들면 베르디, 푸치니 등을 전문으로 하는 가수들은 헨델과 모차르트의 곡을 하게 될 때 빠른 멜리스마를 '뭉개버리는' 사고를 일으키곤 한다. 이는 민첩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예시 1 : 머라이어 캐리의 멜리스마>
<예시 2 : 헨델 메시아 중 나오는 멜리스마들>
물론 훈련을 통해 다시 빠르게 움직이는 음정들을 부를 수 있는 능력을 되찾을 수는 있지만 이 때 소리의 볼륨과 평소와 같은 방식으로는 하이C에 도달하기 어렵게 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한 시즌에 바로크와 낭만시대 오페라를 동시에 소화하기 힘든 이유가 이것이다. 지혜로운 가수라면 시즌별~1년동안 자신이 해야 할 프로그램을 소리 타입에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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