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고모할머니(할아버지의 막내동생) 댁에 가서 저녁 얻어먹고 옛날 이야기를 좀 들었다.
1. 결혼
<span style="letter-spacing: 0px;">할아버지는 7남매의 맏이였으므로 막내였던 고모할머니와는 나이차가 매우 컸고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줄곧 가장 노릇을 해 왔다. 할아버지가 벌어온 돈으로 온 가족이 경상남도 합천에서 충청남도 예산으로 이사를 할 적에 고모할머니는 아직 학생이었으므로 전학을 해야 했는데, 지금이야 다들 알듯이 먼저 전입신고를 하고 학교를 찾아가는 게 순서지만 당시 사람들은 일처리 순서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무작정 이사 온 뒤에 전입신고고 뭐고 일단 다들 학교에 찾아는 식이다 보니 공무원들이 골치를 앓았던 모양이다. 그러던 예산군 오가면사무소에 처음으로 학교를 찾아가기 전에 전입신고부터 하는 사람이 나타났으니, 그게 막내동생을 전학갈 학교에 보내려 찾아온 할아버지였다. 당시 그 모습을 본 면사무소 직원은 '일의 순서와 원칙을 아는 사람이네'하고 넘어갔는데, 나중에 중매가 들어와서 보니 그집 막내딸인 것을 알고 저런 집에서 자란 여식이면 사람이 괜찮겠다는 생각에 받아들여 지금의 고모할아버지가 되었다.</span>
2. 황무지 개간
<span style="letter-spacing: 0px;">공무원의 박봉 대신 농업을 해 보고자 퇴직금을 들고 땅을 구입하려던 고모할아버지는 마침 조치원의 빈 땅을 둘러보고 대금을 치르기 직전이었는데, 종중 큰집의 한 분이 같은 값에 더 넓은 땅을 해 준답시고 중개를 해 준 것이 전북 익산의 황무지를 주었다. 물론 마뜩찮았던 고모할아버지가 이걸로 안된다고 협상한 끝에 그 옆에 개간된 땅도 추가로 좀 더 받아내긴 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땅은 돌밭, 대밭, 찔레밭으로 손을 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span>
포크레인은 당시 없었고 있었어도 부를 돈이 없으니 100% 인력으로 개간을 해야 했다. 그나마 개간된 쪽에 논이 한 마지기 정도 있어서 거기에 씨나락을 좀 뿌렸더니 새들이 털어먹는 바람에 옆집에서 모내기 할 때 안 좋아서 옆에 내 놓은 모가 있으면 조금씩 주워다 심었다고 한다. 그나마 써레질은 큰집에서 일꾼들이 도와준 덕분에 넘어갔다고.
<span style="letter-spacing: 0px;">그렇게 겨우겨우 개간해서 이것저것 해보다가 사과나무를 심고 과수원을 하면서 사과 팔아 농약 사면 손에 쥐는 돈이 없는 시절을 오래 겪었는데 할아버지가 군산 처가집에 갔다가 올라오면서 이것저것 싸들고 동생 보러 오자 식사는 대접해야겠는데 뭐 드릴 것이 없어서 밭에 나가니 호박은 다 따먹어서 없고 호박잎 조금에 가지 두개, 광에는 감자 세 알이 있어 가지 부치고 호박잎 찌고 감자국 끓여서 드렸다고 한다. 그랬더니 평소에 쓸모없는 가시내들 운운하던 할아버지가 예전에 했던 말이 걸렸는지 "딸이 낫다" 하셨다나.</span>
<span style="letter-spacing: 0px;">3. 포도주로 제사술을 올리다</span>
<span style="letter-spacing: 0px;">그렇게 살면서 아이들은 태어났는데 뭐 먹일 것도 없고 해서 어느날 큰집에서 포도 수확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좀 달라고 요청하니 고모할머니더러 큰집어른이 꽤 넉넉하게 포도를 주셨다는 모양이다. 그래서 집에 들고 와가지고 일부는 포도주를 몇 병 만들었는데, 그 해에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고모할머니는 들고 갈 게 뭐 없다 살펴보다가 집에 있는 게 담궈놓은 포도주밖에 없어서 그걸 들고 갔다고 한다. 원래 붉은 술은 귀신이 좋아하지 않으므로 상에 올리는 것은 예법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할아버지는 '딸 정성을 생각하실 것이다'라며 그대로 막내동생이 들고 온 포도주를 제삿상에 올렸다고 한다.</span>
다음번에 찾아갈 때는 노트를 들고 가서 좀 적어와야겠다. 이런 얘기 듣는 게 꽤 재밌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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