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n style="letter-spacing: 0px;">잠시 후 만나게 될 여자친구가 사고로 죽었다. 5년 후에.</span>
나는 현재와 5년 후 미래를 동시에 살아간다. 정확히 말하자면 몸은 현재 시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항상 지금으로부터 5년 후에 무엇이 벌어지는 지 동시에 보이는 것이다. 약 천만분의 일 확률로 나 같은 사람이 태어난다고 한다. 내 능력을 파악하고 난 이후부터는 어떻게든 써 먹어보려는 욕심에 5년 후 보게 될 시험 내용을 외워보려고 힘도 써 봤지만 5년동안 그런 세세한 기억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기에 결국 그 때가 오면 5년 전에 '봤던' 만큼의 결과가 나오곤 했다. 그래도 굵직한 사건사고들에 대한 기억 덕분에 가족과 친지들이 큰 위험을 피하게 하는 것은 가능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내가 미리 보았기 때문에 피할 수 있었던 것인지 혹은 원래 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혹시나 실험체로 쓰이기라도 할까봐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약 5년 전, 나는 친구의 소개로 오늘 처음 만나게 될 사람을 '먼저' 보았다. 만나자마자 깜짝 놀랄 정도로 서로에게 깊게 빠져들었고 지금껏 만나본 누구보다도 많은 부분을 공유할 수 있던 사람이었다. 나는 1년 후의 내가 그녀에게 내 능력에 대해 털어놓으며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지만 그 때 어딘가 시야와 목소리가 흐려지면서 정확한 내용을 기억할 수 없었는데 아마도 5년 후를 보는 능력으로 미래 시점의 내가 또 미래를 보는 방식을 통해 한참 후의 미래를 보는 것이 모종의 이유로 막혀 있어서 여자친구의 미래에 대해 말하고 있던 나를 정확히 볼 수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여자친구는 웃어넘겼고 나는 그 이후 여자친구에게 더 이상 능력에 대해서 꺼내지 않았다.
몇년간 이후의 나는 밤새 인터넷을 뒤지며 미래를 바꿀 방법을 찾았다. 청소년기 때 부터 미리 본 것을 바꾸기 위해 일부러 나와 상관도 없었던 일에 끼어든다던지 해야 할 일에서 발을 뺀다던지 여러 시도를 해 봤지만, 세세한 부분이 조금 바뀔 뿐 모든 사건은 내가 보았던 것에서 거의 변함없는 방식으로 일어나곤 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녀를 만나게 될 순간은 시시각각 다가왔다. 이틀을 앞두고 나는 어느 저명한 교수의 최근 연구 결과에서 겨우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최근 억류된 몇몇 시간여행자들이 미래를 바꾸기 위해 저질렀던 사건들에 대해 직접 인터뷰한 결과, 그들이 미래를 바꾸고자 했던 일련의 사건들에서 입힌 피해는 미래에 있었던 다른 사고들로 인해 일어날 피해만큼만 일어났으며, 그것을 통해 누군가가 살아나거나 죽음을 피하게 된 경우는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여러 유형 중 단 한 가지 사건은 피해에 변동폭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다른 시간축에서 온 두 사람의 시간여행자가 일으킨 사고였다. 시공의 관성에 의해 현재의 시간축에 미래의 시간축에서 온 사람이 변동을 일으켜도 시간축은 최대한 자기 자신을 수복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시간축에서 온 존재가 만나 총 세 개의 시간이 한 공간에 끼어들면서 변이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만약에 내 능력이 시간축에 간섭하는 능력이 맞다면, 시간여행자 혹은 나와 같은 능력자가 한 명만 있으면 나는 일어날 사건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시간은 흐를대로 흘러간 후였다. 내가 그녀를 만난 후 몇달간 불면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던 모습은 이 때문이었을까. 애써 괜찮을 거라 나 자신을 다독였다. 그녀가 떠나기까지는 아직 5년이 더 남았어. 그동안 누군가를 찾으면 되잖아!
드디어 그 날이 왔다. 혼란스러운 가운데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가 앉아있을 카페의 문을 슬며시 열었다.
그렇다. 미래를 보았다고 현재부터 슬퍼하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 나는 5년 후의 그녀를 잃었지만 5년 전 지금 나와 함께할, 아무것도 모를 그녀에게 미래의 슬픔을 전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는 수 밖에.
코너를 돌아 그녀가 앉아있는, 앉아있던 자리로 향했다.
5년 전 그 때 보았던 그 옷차림 그대로 그녀가 고개를 숙인 채 앉아있었다.
간단한 인사를 하며 내가 자리에 앉자 그녀가 숙이고 있던 얼굴을 들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수줍고 멋쩍어하던 표정 대신 그녀는 활짝 웃는 얼굴로 눈물을 끊임없이 흘리고 있었다.
미래가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