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ㅂㅅ 일정성분비의 법칙을 믿는다.
어디에서 ㅂㅅ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집단에 ㅂㅅ이 없다면 바로 니가 ㅂㅅ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기에 어느 집단에서든 스스로를 경계하고 조심하는 자세를 잃지 않으려고 한다.
얼마 전에 날 납치한 회사는 리빌딩(?) 중이라 모든 직원이 처음하는 일을 맡고 있고
마감이 주 단위로 계속 다가오는 상황이다.
지난 주에 끝내야 할 일은 A지역 사업 정산과 당해년도 사업계획서, B와 C지역 용역 제안서이다.
본부장은 전자, 나는 후자를 맡았으며 대표는 수요일까지 A지역과 관련된 일을 1차 마감하고
수요일 저녁에 가제출, 목요일 협의, 금요일 제출 후 재계약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화요일 오후 A지역과 관련된 일이 하나도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대표에게
본부장은 '저는 수요일까지 마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목요일까지면 됩니다'라고 하루를 미뤘다.
주3일 근무자인 나는 수요일엔 우선 놀고 목요일 출근했더니 대표 눈 한쪽에 실핏줄이 터져있었다.
'X팀장(나) 어쩌지. 본부장이 일을 하나도 안 했어. 사업계획서라고 새벽4시에 메일 보냈길래 확인해봤더니 이 상태야'라고 하소연을 한다.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7장 분량으로 제목 목차 빼면 5장인데 그 중 4장은 다른 지역에 제출한 제안서 내용 그대로다.... (이거 9,800만원 짜리 사업인데... ㅡㅡ;;;)
지지난 주 본부장이 담당한 제안서 작업으로 인해 새벽6시에 퇴근한 내 팀원에게
이번 제안서는 내가 반드시 제 시간에 끝내고 정시 퇴근 시켜줄테니 걱정말라고 다독였는데
오늘 하루 X됐음을 느낀 순간이었다.
9시 30분에 출근한 본부장은 대표에게 변명도 안 하고 정산보고서는 알바가 할 것이고
사업계획서는 조금 더 추가하겠다고 한다.
(알바는 군대 다녀오고 복학을 기다리는 친구인데 그 친구에게 230페이지 가량의 정산보고서를 시켜놓고 본인은 내용 파악도 못 하고 있었다.)
정산은 본부장이 수치를 맞춰줘야 알바가 단순작업해서 마치는 것이지 그건 왜 안 맞췄냐니
그건 알바가 1차로 마치면 X팀장에서 봐달라고 하려고 했다고 한다.
아... XX 내가 월요일에 숫자 맞춰줄테니 보여달라고 했잖아...
오늘 내로 제안서 2개 마감해야 내일 새벽에 들고 내려가서 접수할 수 있는데 나보고 언제 보라는 것인지... 더군다나 A지역도 오전 중에 끝내야 협의라도 할꺼 아닌가...
우선 총괄표만 가지고 협의해보겠다고 2시간 내로 본부장은 사업계획서, 나는 정산을 마치고 메일로 보내달라고 한다.
우선 팀원에게 지금 해야할 일을 정리해서 넘겨주고 정산 서류 보기 시작하는데
오늘 2시간 자고 나왔는데 뭘 더 정리하라고 하는거냐고 투덜대던 본부장이 코 골며 졸기 시작한다. (이 새끼가... ㅡㅡ+)
30분 후에 사무실로 되돌아온 대표는 가는 길에 오늘 올 필요 없고 내일 완성본 들고 들어오라고 했다며 불안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정신없이 정산과 제안서 업무를 보며 점심시간이 되었고 밥먹으러 나가려는데 본부장은 안 먹겠다고 한다. 평상시에 억지로라도 데리고 나가는 대표는 그날은 알았다고 우리만 데리고 나간다.
밥 먹고 들어오니 본부장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다.
2주간 숫자 안 맞는다며 공무원 욕을 그리하던 본부장이 미뤄둔 사업 정산에서 총괄 수치 맞추는 것은 딱 2시간 정도의 업무량이었다.
도대체 이 인간은 2주간 사무실에 앉아서 뭘 했던 것일까.
정산 총괄표 넘겨주고 이 수치에 맞춰서 작업하라고 알바에게 이야기하니
이대로라면 끝이 보인다며 좋아한다.(너 이색히 본부장한테 많이 당했구나...)
코골다가 답답한지 끄억끄억하다 다시 코골면서 3시간을 자던 본부장은 일어나서 옆에 있는 알바에게 레몬에이드를 사오라고 한다.
이 시점에서 본부장에 대한 내 평가가 내려졌다.
내가 사무실에서 바지 내리고 똥을 싸지 않는 이상 이 집단에서 ㅂㅅ은 내가 아니구나...
정신없이 정산보고서 쓰던 알바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탕비실에 있는 레몬차를 타왔는데
본부장은 편의점에 파는데 왜 그거 안 사왔냐고 하며 벌컥벌컥 마시더니 다시 잔다.
(아... 혹시 오해가 있을까봐 정리하자면 목요일(평일) 근무시간이었고 대표는 우리 옆에서 일하고 있었다.)
4시간 30분을 자고 일어난 본부장은 밖에 나가서 잠을 깨고 오더니
이런 사업계획서를 보고 누가 우리에게 돈을 주겠냐는 대표 말에 입이 댓 발 내밀더니 뭔가 끄적끄적한다.
대표는 그런 본부장을 데리고 나가서 한 시간 정도 후에 돌아왔고 6시 30분이 되자 본부장은 퇴근했다.
(오후 4시 넘어서도 자는 본부장을 보며 난 '저 사람은 이번 주까지 일하고 그만 두겠구나'라고 생각했고 본부장이 나간 사이에 허탈하게 웃으며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대표말에 '그냥 보내버리세요'라고 대답하긴 했다.)
7시까지 고생한 팀원에게 약속시간 못 지켜 미안하다고 하고 퇴근시키고
10시쯤 제안서 마무리하고 인쇄소로 넘기면서 저녁 겸 야식을 먹게 되었다.
야식으로 온 통닭을 먹으며
X팀장 오늘 고생 많았고 살다보면 일머리가 늦게 터지는 사람도 있다고 이해 좀 하라고 하신다.
'소꿉장난도 아니고 인성이 쓰레기여도 일은 제대로 해야죠'라고 말하려다
하루 종일 참은 대표 속도 말이 아니겠구나 싶어 네 하고 말았다.
그만둘꺼라 생각한 본부장은 오늘도 내 앞에서 꿍시렁 꿍시렁 대면서 뭔가 작업 중이다.
하긴 좋은 대학 석박사 나오면 뭘 하나...
그 나이(40대 후반)에 불러주는 곳도 없을텐데...
애도 우리 애보다 어린데...
니도 참 고생이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은근히 본부장을 무시하는 태도가 없어지진 않는다.
나도 인경수양을 좀 더 해야 하나 보다... ㅡㅡa
그리고 이 긴 글을 왜 이제 올리냐고?
금요일은 노느라 정신없었고 주말은 육아 오늘은 월급루팡 모드이기 때문이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