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n style="color: rgb(0, 0, 0); font-family: 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 font-size: 12px; line-height: 18px;">어렸을 때 모든걸 하나하나 배우기 시작하던 때가 기억이 나진 않는다</span>
감정에 대해서도 배웠을 터, 슬픔과 우울에 대해서 구별하는 법도 배웠을 것이다
어렸을때에는 할머니와 떨어져 있는것이 슬픔이자 곧 그리움 이었다
우울함에 대해서는 어떻게 배웠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언제부터 우울에 대해서 느끼게 되었을까, 아마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있는
행복한 시간이 끝난 뒤 행복의 부재를 그리워 하게 되는 순간이 아마 슬픔보다는 우울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어렸을때에는 할머니, 친구들과의 떨어져 있음에 대해 우울을 느꼈던 것 같다.
초등학교때 즘에는 먼 길을 나갔다가 밤에 집에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두운 창밖 희미한 불빛들을 보며 라디오에서는 김창완 노래가 나왔고
그 상황에서 드는 나에 대한 여러 생각과 감정이 우울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확실히 난 그것을 즐겼다.
그리고 아마 사춘기 즈음부터 나는 우울한 감정을 더 즐기기 시작하게 된 것 같다.
방과후 집에 아무도 없을때
불은 켜놓지 않고 약한 햇빛이 들어오는 거실, 쇼파에 누워서
혹은 내 방 침대에 누워서
복도식로 나있는 창문을 열어놓고
희미한 햇빛이 방 바닥을 가느다랗게 내리쬐는 그 형상을 보면서
놀이터에서 울려퍼지는 희미한 소리를 들으면서
빛에 비치는 먼지조각을 보면서
초등학교 시절 화서시장을 함께 뛰어누비던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어렸을적과는 달리 소극적으로 변해버린 내 자신을 돌아보면서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아련한 상실감을 온전히 마주하는것
그 마음이 저려오는 느낌을 받아들이는 것
우울함이란 감정이 아니었을까.
그 기분을 온전히 만끽하는게 나의 행복이 되었다.
학원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며
가로등과 저녁 불빛을 감상하기도 하고
걸어다니는 사람 한명한명을 구경하기도 하고
가슴속의 상실감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그 시간이
그 광경이
그 냄새가
나에겐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15살때 엄마를 졸라 mp3 플레이어를 구매하면서 부터 나에게 또다른 행복과 우울이 시작되었다
어렸을 때 들었던 김창완 노래를 찾아서 가득 채워 들었다
그 해 겨울부터는 오니츠카 치히로도 알게되어 정말 많은 노래를 들었다
차 안에서도 듣고
길을 걸어가면서도 듣고
잠을 자면서도 들었다
노래를 듣는 그 시간이 나에겐 너무나도 큰 행복이며 큰 우울이었다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그 순간의 감정, 상황, 냄새들이 다시 떠오른다
내 감정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또한 행복과 우울은 하나의 감정이란걸 느끼게 된다.
고등학교 3년은 죽은듯이 지냈다
재수시절 10시반에 3003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1시간이
나의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며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재수시절 하루종일 입을 한번도 열지 않았던 날이 정말 많았다
그런 날들에도 그 저녁 버스 창가 앞에서 나는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의 고민과, 나의 우울과, 나의 고질적인 상실감에 대해 많은 이야기와 많은 결론을 내 보았다.
그렇게 꿈만같은 1년이 지나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대 기숙사에 들어간 것이 내 생에 가장 큰 행복이었다
쳐다보기도 싫고 말 섞기도 싫었던 아빠와 멀리 떨어진것이 너무 행복했다
친구들과 24시간중의 20시간을 항상 함께 하였으며
밤새 술을 마시면서 깊은곳에서부터의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한명한명과 깊은 친밀관계를 맺으며 나의 두번째 인격형성의 시간을 갖게되었다
물론 실수도 많았다
여기에서는 내 인생에 또 다양한 감정의 전시장을 만들게 되었다
설렘도 느끼고, 즐거움도 느끼고, 자괴감도 느끼고, 질투도 느끼고, 개같음도 느끼고, 연민도 느끼고,
우월함도 느끼고, 허무함도 느끼고, 자부심도 느끼고, 행복함도 느끼고, 욕심도 느꼈지만
그 모든 감정에는 우울이 함께했다.
금요일엔 술을 진탕 마시고 토요일 늦잠을 자고 일어나 점심에 짬뽕으로 해장하면서
친구들과 오르비 게시판을 보면서 낄낄거리다가 늦은 오후가 되어서
세탁기를 돌리러 세탁실로 이동하던 그 구름다리
그 옆 평야에 지는 노을빛을 바라보며
그 때 느꼈던 우울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방학때에는 몇 평 작은 자취방에
숨죽여 누워서 에어컨 바람을 쐬기도 하고
겨울엔 방바닥에 등을 붙이기도 하고
저녁엔 창밖을 바라보며 창 틀에 맥주병을 놓고서는
벽에 기대어 앉아 빈 하늘을 바라보던 그때에도 내 옆에는 우울이 있었다
내일모레 30을 바라보는 지금도
공휴일 좋은 날의 좋은 날씨를 뒤로 한 채
커튼을 반쯤 쳐놓고는 창문도 열어 시원하지도 덥지도 않은 바람에
맥주 한캔과 나란히 앉아 맞이하는 이 감상은
감히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온전한 나의 것이다
나는 평생 이 과분한 우울과 함께 마주하며 살 것이다
이 감정만이 나의 영원한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