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밥 이야기에 이은 음식시리즈.
지난 시리즈
감귤은 한자로 柑橘이라고 씁니다. 찾아보면 앞은 감자나무 감(柑), 뒤는 귤나무 귤(橘)자라고 나오죠. 둘은 다른 식물인겁니다.
남송시대 온주 군수 한언직이 쓴 감귤 전문 서적 귤록에는 감과 귤을 구분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감이 8종, 귤이 14종, 그 외 오렌지나 유자가 5종이 있다고 했습니다. 감은 껍질이 얇고 맛이 달며 귤은 껍질이 조금 두텁고 더 새콤하다고...하지만 지금은 워낙 많은 품종 교배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감과 귤로만 딱딱 나눌 수는 없는 상황이죠. 일본에서는 귤을 미캉(밀감蜜柑)이라고 부르듯 둘 사이에서 교잡종이 워낙 많아서 지금은 구분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워낙에 귤속에 속하는 감귤, 오렌지, 레몬, 유자, 라임, 자몽 등은 서로 교배가 쉽다보니 말이지요. 예를 들어 제주 특산품으로 여겨지는 한라봉은 위 한언직이 살던 온주의 온주밀감에 트로비타 오렌지를 교잡해 만든 '청견'이라는 일본산 품종에다가 인도 원산의 '병감'이라는 품종(이것도 감귤과 포멜로 교잡종임)을 또 교잡해 만든 품종입니다.
지금이야 온난화 덕분(?)에 국내에서도 재배지역이 넓어졌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귀한 과일이었던 귤은 병문안 선물용이었습니다. 당시 제주도에서는 귤나무 한 그루면 자식 대학도 보낸다고 대학나무라고 불렀다죠? 조선시대에는 이게 얼마나 귀했냐면 명종때부터 매년 제주도에서 감귤이 진상되면 성균관 명륜당(명륜진사갈비의 그 명륜 맞음...)에 관학유생들을 모아놓고 감귤을 나누어준 뒤 시험을 보는 황감제(黃柑製)라는 시험제도가 있을 정도였죠. 일본도 귤이 특별한 과일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일까요? 일본 4대성씨 원평등귤(源平藤橘) 중 마지막이 바로 이 귤을 뜻하는 타치바나로, 덴노 4대를 섬긴 궁녀 아가타노 이누카이노 미치요(県犬養 三千代)에게 겐메이 덴노가 귤나무 가지가 새겨진 잔을 하사하면서 타치바나(橘)라는 성을 내린데서 유래합니다.
다시 중국으로 돌아갑니다. 합종연횡(合縱連橫)이라는 고사성어에서 합종책(작은 나라끼리 연합해 큰 나라에 대항한다)을 주장한 소진이 북서쪽 내륙국인 조나라가 연합하면 제나라에서 물고기와 소금, 초나라에서 귤과 유자가 나는 땅을 얻을 수 있다고 설득하는 걸 보면 귤은 그때도 꽤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특산품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국지에도 귤이 나옵니다. 원술의 집에 육강과 그의 여섯살짜리 아들 육적이 방문하자 원술은 육씨 부자에게 귤을 대접합니다. 이 때 육적이 품 안에 귤 두 개를 숨겼는데 떠날 때 인사를 하며 몸을 굽히다 귤이 품에서 흘러나와 떨어졌습니다. 원술이 왜 귤을 가져가느냐고 묻자 돌아가서 어머니께 맛보게 하려 했다고 답하죠. 꼬마도 귤이 귀한 과일인 걸 알 정도로 쉽게 구하기 힘든 귀한 과일이었던 셈입니다. 그 외에도 오나라 말기 관료였던 이형은 아내가 함부로 가산을 늘리지 못하게 하자 아내 몰래 무릉에 감귤나무 묘목 천 그루를 심어 남겼는데, 전쟁통에 부자들도 목숨과 재물이 휙휙 날아가던 시절이었지만 나무를 심어둔 덕분에 나중에 귤이 열매를 맺기 시작하면서 자손들이 넉넉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귤 이야기는 여기까지. 다음 시간은 차 이야기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