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불확실성의 시대다. 지인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적힌 내용에는 불확실한 것들 속에서 나아질 거라는 희망? 믿음? 그런 것에서 도파민이 나온다는 연구 결과를 보니 자기도 도파민 중독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다. 속으로 ‘도박은 못하겠군’이란 생각이 듦과 동시에 ‘인생이 도박이군’이란 생각도 스쳐지나갔다.
한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이 시국 속에서 그나마 확실한 건 몇가지 없다. 그 중 끝까지 변하지 않을 것 같은게 바로 먹는게 아닐까. 수면욕이야 자면 그만이고, 성욕은... 뭐 이글을 읽고 있다면 당신이 걱정할 부분은 아닌 것 같으니 말이다. 여튼 확실한 걸 찾는다는 거창한 핑계로 길을 나섰다.
부산대가 붐비는 상권이라는 것은 알고 있겠지만 학교 앞이라는 특성상 그야말로 가성비의 가게가 넘쳐나는 곳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를 기반으로 확장에 성공한 가게들이 꽤 있는데, 서면으로 이전한 라라관이 그렇고, 지금은 전국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명량핫도그의 본점도 부산대, 그리고 유가네 닭갈비도 시작은 부산대였다.
그런 의미인지 요즘은 부산대에도 나름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가게들이 좀 등장했는데, 사실 오늘 갈 가게는 부산대에서 유명...해졌다기 보다 광안리에 분점을 내면서 더 유명해진 돈까스 집이 되겠다. 톤쇼우라는 곳.
사실 이 가게의 소문은 광안리 확장이후 인스타 게시물이 폭발하면서 치솟았다. 부산대 정문 반경 100미터 이내에 있는 돈까스 집만 어림잡아 열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데, 가성비 극악의 이 가게가 입소문을 타려면 어지간한 자신감 아니면 힘들었을 거다. 하지만 밥을 먹으러 오픈 시간이 조금 넘은 11시 40분에 여길 지나갔을 때 가게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달까. 나중에 알고보니 매장내에 대기석까지 있었으니 실제 대기자는 20명이 넘었다는 얘기였으니.
코로나 덕분에 프로 백수가 된 터라 아예 11시에 집을 나섰다. 11시 5분쯤 도착하니 역시 아무도 없기도 하고 혼자 줄 서있기 민망해서 화장실을 갔다왔더니 어느새 줄이 만들어져 있는 기적을 보아하니 긴장감이 안들수가 없었다. 물론 그중에 혼찐은 나밖에 없었지만.
카광 그놈이 문제다. 혼자 밥 먹는게 어때서. 그놈이 혼찐 밈을 만들어버리는 덕에 혼자 밥 먹는게 꽤 신경쓰이는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어느 만화가가 그러지 않았는가.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100만원 봉급에 150만원치 일을, 200만원의 봉급에는 300만원치의 일을 해내서 사장을 미안하게 만들라고. 난 오늘 나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혼자지만 둘이 부럽지 않은 매상을 여기에 안길 계획이다.
기다리는 동안 메뉴판을 먼저 나눠준다. 이런곳에서 줄을 서가며 기다린다는 의미를 ‘리미티드’를 먼저 먹겠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저없이 버크셔특로스카츠와 테라 생맥을 주문했다.
들어가니 진짜 일본식당 같은 느낌이군. 물론 칸막이는 쳐놨다지만 거리두기는 불가능한 구조다. 부산은 확진자가 없다는 오늘의 뉴스가 떠올랐지만 지금은 돈가스 하나에 내 건강을 걸어야 한다. 부디 내 돈가스가 코로나보다 가취있기를.
생맥이 먼저 나왔다. 테라는 역시 맛있구만. 점심부터 맥주 주문하는 사람 처음 보듯 마스크 쓴 눈들이 커지는 것 같다. 뭐 어쩌라고. 먹고 싶으면 시키시던지
녀석이 나왔다. 등심이라더니 역시 사이즈가 다르구만. 옆에 있는 돌판은 먼지가 아니고 무려 트러플소금이란다. 비싼걸 시키니 대접받는구만. 비싼걸 안시켜도 대접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랫부분은 살코기, 윗부분은 기름이 느껴지는 그런 구조였다. 기다릴 필요가 없지. 바로 입으로 가져갈 시간이야.
선홍빛 자태가 빛나는 돈까스를 하나 잡아서 새하얀 소금에 가져갔다. 트러플 소금이라니. 꽤 향이 셀텐데. 물론 입에 넣는 순간 기우였다는 걸 깨닫을수밖에 없었다. 바삭한 튀김에 촉촉한 속살. 이건 마치 낮져밤이, 처녀빗치, 내강외유, 모든여자에겐 차갑지만 내 여자에겐 따뜻하겠지....
장국에도 돼지기름이 들어가있어 고소한 느낌이 들었다. 특을 시켜서 그런지 양이 많아 뒤로 갈수록 좀 물린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유비에게 공명이 있듯, 나에겐 테라가 있다.
말끔하게 기름기를 씻어낸 맥주가 참 반갑기만 하다. 살코기는 살코기대로, 윗부분의 기름은 기름대로. 슬랜더든 육덕이든 무엇이 고민인가. 둘다 즐길수 있는 것을.
다 먹어간다 싶으니 주변의 눈들이 나를 보는 느낌이다. 사실 음식이 나오기 전부터 이미 만석. 대기석도 다 차버려 사람들이 서 있다. 하지만 너희가 간과하고 있는게 하나 있지. 나는 혼자다. 내가 일어나봤자 너흰 못앉아. 그러니 날 보며 도파민을 맘껏 분출하렴. 마치 만원 전철에서 금방 내릴것처럼 앉아있는 사람앞에 서서 종점까지 가는 것처럼.
맛집은 소문이 나면 변한다는 속설이 많다. 아님 더 크게 확장을 하던지 하며 원래의 맛을 져버리는 경우도 많고. 이곳도 광안리가 낫니 여기가 낫니 개인차가 있는 모양이던데 가까운 곳에 이러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있으니 어떠한가. 이제 일어날 시간이다.
여전히 들어오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유유히 빠져나간다. 불쌍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너넨 최소 30분 넘게 더 기다려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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