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일어난 그 해 2월, 마이애미에는 큰 보트쇼가 있었다고 합니다(그러니까 브레넌은 사건 발생 후 거의 9개월이 지나서 사건을 맡은 겁니다). 아마도 흰색 티셔츠의 남자는 머큐리 마린과 관련된 일을 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면 그의 떡대 친구 또한 아마 모종의 연관이 있을 겁니다.
머큐리 마린은 브런즈윅 코퍼레이션이라는 기업의 자회사입니다. 모회사는 당구와 볼링을 비롯한 여러가지 레저 용품을 취급하는 곳이며 머큐리 마린 외에도 여러 개의 보트 회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트 쇼에 그룹 차원에서 꽤 지원이 있었겠죠.
브레넌은 사건이 벌어진 호텔에 보트쇼에 참가한 직원이 머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회사의 보안 책임자 앨런 스펄링에게 전화를 걸어 수사 내용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스펄링이 확인해보니 머큐리 마린의 직원은 다른 호텔에서 머물렀다고 합니다. 전개가 바라던 대로 되지 않자 브레넌은 다시 머리를 쥐어짜냈습니다. 혹시 보트쇼에서 회사 부스를 세운 스탭들이 호텔에 있던 것은 아닐까? 이 또한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럼 그 티셔츠는 누가 입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스펄링의 회신은 2주가 걸렸습니다. 확인 결과 티셔츠는 회사 직원들이 입은 게 아니라 보트쇼 푸드코트에서 나눠주는 용도로 쓰였다는 겁니다. 음식 케이터링을 담당한 곳은 센터플레이트라는 회사로, 대형 스포츠 경기장이나 행사장에서 요리를 맡는 곳이었습니다. 미주 전 지역에 걸쳐 영업을 하는 큰 회사다보니 직원들은 전국에 흩어져서 일하고 있었구요. 센터플레이트에서는 이번 보트쇼에 200명의 직원을 썼는데 그중 일부가 그 호텔에서 숙박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센터플레이트 측에 연락을 넣어 직원 중 300파운드 가량 되는 안경 쓴 커다란 흑인이 있는지 문의하자 몇 주 후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직원들 중 이름을 기억하지는 못해도 만난 기억이 있다는 사람이 있어서 물어보니 용의자는 뉴올리언스의 마이너리그 경기장인 제퍼 필드에서 일하기 위해 고용되었다고 합니다. 메타리라는 이제 막 뻗어나가기 시작한 작은 도시를 연고로 둔 뉴올리언스 제퍼스의 홈구장이었죠. 제대로 된 단서를 잡았구나 싶었던 브레넌이었지만 여기에 악재가 겹칩니다.
2005년 여름 미국 남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 일대를 완전히 박살내버렸고 메타리 거주민들은 전부 대피해서 다른 곳으로 흩어진 상태였습니다.
허리케인이 다음 단서를 날려버리는 바람에 용의자를 확정하고 나서도 벌써 몇달이 흐르고 말았습니다. 다들 사건에 손 떼고 마무리 짓고 싶어하는 눈치였습니다. 보험사 측은 그냥 피해자가 창녀였고 손님에게 맞아죽을 뻔 한 사건으로 끝내서 호텔의 책임이 없는 걸로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죠. 브레넌은 처음 일에 착수할 때부터 오로지 진실을 말하겠다고 못박았습니다.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넘긴 후 푸트 형사는 다른 사건도 맡아서 수사해야 하는 처지였으므로 자연스레 신경을 껐고 브레넌의 수사 진척에 대해선 공공연히 회의적이었습니다.
한편 브레넌의 머릿속에는 분명한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저 대단한 덩치가 자신의 범죄가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태연하게 일하러 나가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면서 다음 먹잇감을 찾는 모습 말입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뉴올리언스 쪽 수사를 더디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옛 친구가 새로운 단서를 들고 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몇년 전 뉴올리언스 지역 경찰 어니스트 데마 경감은 탈출한 죄수를 추격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길목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휙 달려들어 앞에 가던 탈옥범에게 태클을 넣어 제압하는 걸 보게 됩니다. 당시 아이들과 휴가를 왔던 브레넌이 다급한 상황을 보고 경찰을 돕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든 것이었죠. 데마 경감의 부하들이 오기 전까지 브레넌은 범인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붙들어 잡았고, 경찰은 브레넌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데마 경감은 브레넌을 가리켜 배트맨이라고 불렀습니다. 허리케인에 얻어맞아 경찰 또한 정신이 없는 상태였지만 배트맨이 부르면 데마 경감은 당연히 움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데마 경감은 휘하의 경사 몇명을 불러 다음 야구 시즌을 위해 복구중이던 제퍼 필드에 조사를 보냅니다. 브레넌은 곧 데마로부터 연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좋은 소식하고 나쁜 소식이 있어. 좋은 소식은 그 자의 이름을 알아냈다는 거야."
"나쁜 소식은?"
"이름이 마이크 존스야. 너무 흔한 이름이라 한 백만명은 있을 것 같네. 그리고 이미 일은 그만둔 지 꽤 됐고 다들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대."
이름이라도 건진 게 어딥니까. 브레넌은 데마에게 감사를 전했고, 바로 호텔 투숙객 데이터베이스를 확인했습니다. 역시나 사건이 있던 때 마이크 존스라는 이름의 투숙객이 명단에 있었습니다. 체크인은 사건 7일 전인 2월 14일이었고 그가 캐리어를 끌고 자동차에 싣는 영상이 촬영된 후 하루가 지난 22일이 체크아웃 날짜였습니다. 결제할 때 사용한 비자 카드는 결제취소가 되었지만 기록이 남아 카드에 적힌 그의 풀네임이 마이클 리 존스(Michael Lee Jones)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주소는 그가 1년 전에 머물던 버지니아 지역을 썼고 현 주소는 남기지 않았습니다. 전화번호 또한 개인 전화가 아니라 센터플레이트의 전화번호였습니다. 여기까지는 호텔 측이 가지고 있는 자료로 알 수 있었지만 신용카드 회사로부터 직접 신상정보를 받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했고, 여전히 이 정도 증거만으로는 경찰을 움직이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수사에 불이 다시 붙은 건 사실입니다. 존스가 센터플레이트의 일자리를 그만뒀고 주변 사람들이 행적을 모른다고 해도 마이크 존스라는 인간의 다음 행동을 유추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능숙하게 사람을 가방에 넣는 솜씨로 보았을 때 이건 루틴화가 된 작업임에 분명했습니다. 존스는 요리로 먹고 사는 사람이고 센터플레이트같이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일하는 회사라면 그가 먹잇감을 찾아 사냥한 다음 장소로 떠나는 것이 매우 쉽습니다. 알리바이도 성립하고 숙식비도 해결되는데다 월급까지 챙겨주죠. 이렇게 딱 맞는 자리를 그만둔 사람이 이만큼의 경력을 갖고서 할 행동은 무엇일까요? 브레넌은 센터플레이트로부터 비슷한 일을 하는 회사가 있는지 물어본 다음 인터넷을 뒤져 같은 직종에서 일하는 요식업계의 경쟁사 명단을 만듭니다.
또 길고 지루한 일입니다. 각 회사의 인사과에 전화를 걸어 확인한 다음 하나씩 지워나가는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사진 왼쪽이 어니스트 데마 경감의 2018년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