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을 지휘하고 있던 마이애미 경찰의 푸트 형사는 언짢았습니다. 사건이 지지부진하자 호텔 측에서 사설 탐정을 데려왔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설 탐정이 사건 현장을 기웃거린다는 것은 경찰로써는 짜증이 올라오는 일이니까요. 그렇다고 호텔 측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자신들은 평소처럼 잘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고소를 당했으니 억울할 수 밖에요. 그래서 호텔은 자신을 변호할 로펌을 선임했고 로펌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제대로 알아내기 위해 켄 브레넌이라는 사설 탐정을 고용했습니다. 이 양반이 전체 스토리의 주인공입니다.
켄 브레넌은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금목걸이를 두른 풍채 좋은 중년이었습니다. 롱 아일랜드 지역에서 경찰 생활을 하다가 마약단속국 요원으로 8년을 일했고, 90년대 중반에 상품 중개인 일을 좀 하다가 사설 탐정으로 활동중인 사람이었죠. 애들은 다 컸고 부인은 이혼 후 지금은 사망한지라 한 사건에 집요하게 매달리기 좋은 가정 환경(?)도 로펌의 눈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브레넌은 지루한 업무나 같잖은 사기극보다는 이번 사건처럼 미궁에 빠져서 누군가가 확실한 단서를 찾아내야 하는 어려운 사건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활기차고 느긋한 성격이었지만 자신이 세운 원칙에는 엄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의뢰인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반드시 찾아낼 겁니다. 하지만 의뢰주를 돕기 위해서 찾아낸 사실을 숨기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저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낼 뿐입니다."
자신이 찾아낸 정보가 고객에게 도움이 되는 건 좋지만 브레넌에게 있어서 그것은 1순위가 아니었습니다. 법정에서 승소하는 것이 아니라 미스테리를 파헤치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요.
해야 할 일은 분명했습니다. 누가 이 여성을 강간하고 폭행한 뒤 늪지대 풀숲에 버렸는지 찾아내는 일. 여러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납니다. 습격이 호텔에서 일어났는지, 아니면 아무도 모르게 호텔을 빠져나갔다가 사건 현장에서 범인을 만난 것인지, 혹은 다른데서 공격당한 것인지도 불분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그저 단순한 피해자인지, 아니면 모국의 더 큰 범죄조직에 연루된 것은 아닌지, 성폭행인지 매춘인지, 또 다른 무언가에 연루된 것은 아닌지 등등...질문 중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매우 적었습니다.
그는 푸트 형사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나이 또래도 비슷하고 브레넌 또한 경찰에 몸담은 경력이 있기 때문에 이야기는 그럭저럭 통하는 편이었지만 푸트 형사의 결론은 차가웠습니다.
"씨부럴 이봐, 당신이나 나나 잘 알잖소. 여기서 당신이 수사해서 뭐가 더 나오겠냐구."
"수사를 이래라저래라는 안 할 거고 무슨 짓을 하든 다 보고한 후에 하겠습니다. 만약에 내가 범인이 누군지 알아내도 체포는 당신이 하는 겁니다. 형사양반 엿먹일 짓은 안할 테니까 걱정 마시고."
이미 이잡듯이 다 털어낸 후라 더 이상의 증거가 나올리 없었지만 푸트 형사는 그의 논리에서 뭔가를 느꼈는지 사설탐정과는 좀처럼 나누지 않는 경찰 자료를 공유하기로 했습니다. 사건 현장 사진과 감시 카메라 화상의 기록, 그리고 혼돈 그 자체인 피해자 사정 청취 기록까지. 푸트형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생각했기에, 켄 브레넌에게 무운을 빌어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보험사에서 나온 조사원이 작성한 기록 또한 별 다른 내용이 없었습니다. 이 여성의 기억은 여전히 헝클어진 채여서 처음엔 한 명에게 공격당했다고 했다가, 셋이었다가, 마지막엔 둘이라고 답했습니다. 범인의 억양 또한 처음엔 히스패닉계라고 했다가 루마니아계인 같기도 하다고 말을 바꾸는 등, 제대로 된 증거라고 볼 수 없었습니다.
호텔의 경비 시스템은 엄중했습니다. 호텔 부지를 펜스가 둘러쌌고 출입구는 적었습니다. 후문은 원격으로 조작이 가능하지만 항상 감시카메라와 경비가 지키고 있었고 모든 출입구의 앞뒤, 호텔 정문, 로비, 엘리베이터, 수영장, 주차장 모두 감시카메라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객실의 카드키는 로그가 저장되어 언제 문을 열고 닫았는지 기록이 남기 때문에 어떤 손님이 방을 들어오고 나갔는지 동선을 추적하는 것도 비교적 쉬웠습니다.
브레넌은 좋은 수사관이 다들 하듯 무엇을 확실히 알고 있는지 분명히 하는 것 부터 시작했습니다. 확실한 정보는 사건 당일 오전 3시 41분 피해자가 자기 객실이 있는 4층으로 올라가 카드키로 문을 열었다는 것과 동이 틀 무렵 반죽음이 된 채로 멀리 떨어진 늪지대 풀숲가에서 발견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약 3~4시간 사이에 모든 사건이 벌어졌다는 얘긴데, 피해자가 바깥으로 나간 모습을 잡은 카메라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카메라에 잡힌 피해자의 사건 전 모습은 어깨 길이 금발에 붉은 자켓으로 눈에 잘 띄었습니다. 몇달째 호텔에 머무르다 보니 지겨웠는지 그녀는 자주 로비로 내려와 호텔 직원이나 손님들과 잡담을 하거나 담배를 피우러 건물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피해자는 그 날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가 자정쯤 되어 돌아온 뒤 오전 3시에 밖에 또 밖으로 나갔는데, 본인 말로는 우크라이나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를 하기 위해 근처 편의점에 국제전화 카드를 사러 나갔다고 합니다. 얼마 후 다시 호텔로 돌아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뒤에 서 있던 거구의 흑인 남성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엘리베이터 앞 카메라에 담겨 있던 피해자의 마지막 기록이었습니다.
피해자는 자신이 다른 데 가지 않고 4층에 올라가자마자 바로 문 열고 들어갔다고 증언을 했는데 호텔 컴퓨터의 객실 출입문 기록에 의하면 약 20분이 지나서야 객실 문이 열렸다고 되어 있어서 처음에는 미심쩍은 의문이 남았지만 알고보니 엘리베이터 카메라 시간이 20분 늦었던 것이라 다행히 피해자가 누명을 쓰는 일은 없었습니다. 어쨌든, 이 이상의 화상 기록은 없었습니다.
모든 카메라는 모션 센서가 달려 있어서 움직이는 물체를 감지하면 움직이는 식으로 운용되었으나 고장이 난 적은 없었습니다. 혹시나 싶어 경찰은 여러 각도에서 움직여 보기도 하고 최대한 느리게 움직여서 모션 센서가 감지를 못하게 하는 방법은 없었는지 실험해 봤지만 아무리 느리게 움직여도 카메라는 착실하게 모든 사물을 잘 잡아내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럼 적어도 호텔 카메라의 감시를 요리조리 피해서 나간 것은 아니라는 얘기가 됩니다.
4층 창문을 통해서 나가기 위해선 누군가가 이미 기절한 피해자를 밑에서 받아줘야 하고 그 다음 호텔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창문 아래는 낮은 관목이 있어서 바닥에 던지거나 로프를 내렸거나 사람 정도 무게에 의해 눌렸거나 하면 흔적이 남아야 했습니다. 피해자의 몸에도 끈에 묶였거나 높은 곳에서 딸어진 흔적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성이 없었습니다. 여러명이 합심해서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세심하게 처리를 했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브레넌은 강간하려고 팀을 짜서 여자를 습격해 기절시킨 다음 4층에서 매달아내리는 폭력적인 성범죄자 집단이라는 건 무슨 미친 마술쇼 공연팀이 단체로 돌아서 저지른 게 아닌 이상 다른 현저히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했습니다(제 생각에도 저런 수고를 했으면 납치해서 돈을 뜯어낸다거나 할 것 같네요).
그러므로 브레넌의 결론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가 정문으로 나갔다는 것이었습니다. 보험사 조사원의 기록 또한 "어떻게 이 여성이 호텔 밖으로 나갔는지가 수수께끼다"라며 정리되어 있었죠. 좀처럼 깨기 힘든 수수께끼였습니다.
브레넌은 메모장에 한 단어를 끄적였습니다.
"위장?"
그는 악착같이 모든 방문객의 감시카메라 기록을 뒤졌습니다. 손님이 들어와서 정문 카메라에 잡힌 뒤 로비 카메라에, 이어서 엘리베이터 카메라, 그리고 객실 카드키가 열리고 닫히는 기록을 모두 연결하고 반대로 나갈때는 문, 엘리베이터, 로비, 정문으로 나간 후 주차장에 있는 차가 나가고 들어오는 것 까지...개인손님과 단체손님을 막론하고 모든 기록을 샅샅이 살펴보면서 용의자가 아닌 사람을 리스트에서 하나씩 줄여 나갔습니다. 누군가가 피해자가 들어오기 전에 자기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용의선상에서 제외했습니다. 누군가가 사건 시간대 전에 호텔을 나가서 사건이 일어나는 시점까지 들어오지 않았다면 마찬가지로 제외했고, 마지막으로 의심스러운 시간대에 나간 사람들 중 아주 작은 가방이나 가방 없이 나가는 사람을 조심스럽게 제외했습니다. 이상하거나 변덕스러운 행동을 하는 사람은 없는지도 꼼꼼하게 살펴본 결과, 딱 한 명의 용의자가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