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혼방은 더 이상 덕후를 위한 사이트가 아니다.
2. 도덕적인 선을 지키고 싸우지 말자.
2020년입니다. KBS에서는 새해를 맞아 1989년작 2020우주의 원더키디를 스트리밍으로 방송한다고 하더군요. 그저 숫자가 바뀔 따름이지만, 두번째 자리 수가 1에서 2로 바뀐다는 게 많은 이들에게는 꽤 여러 의미로 다가오는 모양입니다.
아마 신혼방 개설이 2010년이었던가요? 도라지닷컴을 포함하여 10년은 묵은 사이트가 된 셈입니다. 이곳의 사이트 타이틀은 '아스카와 나의 신혼방'이며 모토는 '찌질거리는 이를 까지 말라'입니다. 이것은 이전부터 바뀐 적이 없는 사이트의 근본 기조입니다. 리자콴이 이것을 새로 바꾼다는 발표를 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먼저 타이틀인 '아스카와 나의 신혼방'이라는 것은 일종의 빌려온 제목으로, 그 뿌리는 현재 관계가 없으나마나한 레진 블로그에서 비롯합니다. 신극장판 에반게리온:파 개봉 이후 등장 캐릭터 아스카를 자신의 부인이라고 선언한 이후 만들어진 게시판이 접속자 폭주로 터져나가면서 강원도에서 은거하던 리자콴이 사이트의 기틀을 다시 잡고 세운 뒤 유명무실한 절대자 + 실무를 담당하는 관리자라는 체계가 완성됩니다. 레진닷컴의 발족 이후 완전히 분리를 하게 된 신혼방이지만 여전히 이곳은 신혼방이라 자칭하며 에반게리온 덕질에 그 이름의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사이트 이용자 중 실제로 자신을 덕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덕도(德道)를 계속 쌓고 있는 이가 다수라고 할 수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신혼방'이라는 타이틀은 사이트 이용자를 결집하는 요소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사이트의 정체성을 유지시키는 것은 다름아닌 모토, '찌질거리는 이를 까지 말라'입니다. 소극적인 형태의 긍정형 명령문입니다. 찌질함에 대한 적극적인 반응은 찌질한 사람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응원을 해 준다거나 그 상태 자체를 부정하고 꾸짖는 경우가 있겠습니다. 전자는 격려, 후자는 경멸이 되겠지요(물론 도덕적, 법적으로 명백한 잘못에 대한 비판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신혼방에서 찌질함에 대한 반응은 그 존재에 대한 긍정입니다. 글 작성자가 자신의 찌질함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글을 쓰면 다른 이용자들은 자신 또한 그러함을 나타내며 긍정하거나 그 생각에 대해 인정하는 것이 모토를 따르는 법이 되겠습니다. 격려와 응원을 보내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만, 지나치게 그 쪽으로 간다면 '서로 상처를 핥아주는' 형식으로 자위하는 극단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적당히 해야겠지요. 무엇보다도 힘든 상태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라는 말은 없었으면 합니다.
내가 읽은 무언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발언하는 것이 어떤 상황에 대한 논리적인 지식의 습득을 못한다는 의미라면, 그것은 1. 게시물의 논리가 너무 난해했거나 2. 내용을 알기 위해 터무니없이 많은 배경지식이 필요한 경우입니다. 그저 누군가가 놓여 있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 '나는 이해하기 싫다'에 가깝습니다. 내가 이해하기 싫고 내가 살아온 방식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해하되 내 성미와 맞지 않는 것이죠. 우리는 그런 삶을 겪고 있는 누군가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져와서 올린 걸 볼 뿐입니다(즉, 상대가 겪고 있는 상황이나 사는 방식이 주변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이라서 내 생각과 행동방식을 적극적으로 부딪혀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을 꺼내 놓는 이들에게 우리는 '찌질거리는 이를 까지 말라'고 정해진 곳에서 글쓴이가 하지 못한 일, 했어야 하는 일에 대해 꼬집기보다는 인정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모토가 은유하는 바는 접속자들이 찌질함을 훌륭히 갖추고 있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다를 바 없는 사람이거든요. 우리 또한 힘들기에 남을 일으켜 세워줄 만큼의 기력은 없지만, 다시 일어날 때 까지 지켜봐 줄 수는 있습니다. 염치없게도 다른 이에게 마음의 짐을 떠 넘기는 모양이라면 그렇다고 말 해야겠네요. 그러므로 우리가 할 것은 그저 기쁜 일에 같이 웃고 슬픈 일에 같이 울면 되는 간단한 일입니다. 이곳이 어떤 사람이 오더라도 가드 풀고 털어놔도 괜찮은 곳으로 남게 되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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